프라도 미술관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이어 유럽의 3대 미술관중 하나로 손꼽힌다.
스페인의 궁정화가인 고야, 벨라스케스 등의 유명한 그림들이 많아서 볼거리가 풍성하여 부푼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June 6, 1599 – August 6, 1660)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로, 펠레페 4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다.
궁정화가 답게 왕가나 귀족들의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Las Maninas는 그의 작품들을 넘어서 유럽 회화사 최고의 걸작이다.
안달루시아의 세비야에서 태어나서 태어나서, 20대 초반에 세비야에서 명성을 얻어 스승의 딸과 결혼했다.
벨라스케가 20대 중반에 왕의 화가가 죽어 마드리드로 가 왕의 화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때문에 스페인의 중세 화가들은 교회에 사랑을 받거나 왕의 사랑을 받거나 하는데, 스페인의 또다른 유명한 화가 무릴리요는 교회의 사랑을 받았던 반면, 벨라스케스는 왕의 사랑을 받았다.


프라도미술관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작품들.

Las Meninas (라스 메니나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가운데에 있는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와 주변의 시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왕 부부이다.
주인공은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저 멀리 거울속에 비쳐지면서 사랑하는 딸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수수께끼같은 느낌이 든다. 벨라스케스 본인 또한 그림을 그리는 모습으로 안에 들어가 있다.




라스 메니나스는 피카소도 이를 패러디하여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유럽 회화사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걸작이라고 한다.


피카소의 라스 메니나스


피카소의 라스메니나스는 다음날 바르셀로나로 이동하여  피카소 미술관에서 볼 수 있어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다시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라스메니나스속의 인물 설명.


주요 인물들.
1   주인공 마르게리타 공주.
9   벨라스케스 본인
10 (거울 속) 펠리페 4세
11 (거울 속) 마리아나 왕비 (펠리페 4세의 부인)



Apollo in the Forge of Vulcan (불카누스의 대장간)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가 자신의 대장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폴론 신이 찾아와 불카누스의 부인인 비너스가 마르스와 바람을 핀다고 알려주는 장면이다. 같이 일하는 대장장이들도 함께 놀라고 있다. 


 
The Triumph of Bacchus (바쿠스의 대관)



신화를 주제로 한 경건한 그림이기 보다는 사실적이고, 주신이 바쿠스를 신적인 대상이 아니라 술취한 동네 아저씨처럼 묘사했다. 바쿠스를 둘러싸고 있는 농부들은 일상의 현실 속 사람의 얼굴이다.


Las Hilanderas (실잣는 여인들)



여인들이 실잣는 대결과 뒤에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아라크네의 이야기다.
아라크네가 아테나에 도전하여 아테나에게 노여움을 사 거미로 변신하여 영원히 실을 잣는 이야기.


The Surrender of Breda (브레다 함락)



네덜란드의 도시 브레다가 스페인에 함락된 사건을 그린 그림이다.
함락된 브레다 장군이 스페인 장군에게 열쇠를 바치고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분위기라기 보다는 정상회담 분위기다. 스페인에서 그려서 이런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May 26, 10] Madrid - Museo del Prado

Posted 2010. 7. 10. 01:29

2박 3일간의 남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마드리드 자체는 볼것이 많이 않다는 평이 많지만, 근교 도시로 이동하기 위한 거점 도시로 매우 좋다.
마드리드를 거점으로 두고 이동했던 기억이 좋아서 그런지 여행이 끝나고 나서는 바르셀로나보다 마드리드가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도시 자체가 매우 작아서 더 좋기도 하고.

아침 일직 일어나 호텔에서 준 쿠폰을 들고 근방 까페에서 츄로스와 초코라떼를 먹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밤새 술마시고 츄로스로 해장을 한다고 한다. 본디 해장이란 개념이 있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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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혼자 보기 어려울것 같아서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유로 자전거나라에 미술기행투어를 신청해서 약속장소인 Retiro 역으로 나갔는데, 아나운서 같으신 여자 가이드분과 영국 어학연수에서 만난 스페인 남친과 결혼하여 마드리드에서 산지 1년 됐다는 29살 동갑내기 여자, 체코에서 교환학생 중이라는 21살 여학생, 그리고 나까지 여자 넷이서 단촐한 미술관 투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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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이 유럽에서 손꼽히는 미술관이라 그런지 촬영 금지라 내부 사진은 한장도 없다.
고야,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비롯한 유명한 그림들을 집중해서 4시간 동안 미술관 구경을 하니, 웬만한 트레킹보다 더 힘들었다. 공기도 탁한 곳에서 집중해서 쉬지않고 구경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미술관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건강이 안좋을것 같다.



춥고 머리가 아파서 잠깐 밖으로 쉬러 나왔다가...
프라도 미술관은 티켓을 한번 끊으면 그날동안은 자유로이 미술관 문을 드나들 수 있어서, 밖에서 점심을 다시 들어 오는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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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을 나와서 산타크루즈 마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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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리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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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에서 점심 식사.




나의 선택은 항상 모험적이었는데, 의외로 생선튀김이 먹을만 했다.






산타크루즈 거리는 유대인이 살았던 마을이다.
미로같은 골목길에 까페, 상점들이 몰려 있다.



바람둥이 돈주앙의 배경이 된 곳. 지금은 레스토랑이다.
 







이슬람 양식의 가정집이라는데, 이슬람 가정집은 어딘지 모르게 폐쇄적이고 안에 정원이 꽁꽁 숨겨져 있다.
은밀한 구속이 있어보인다.




골목골목들.








상점의 아기자기한 접시들.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그런지 예쁜 접시를 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지만, 결혼만 했어도 집어왔을것 같은데,
 



산타크루즈 거리의 작은 까페에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콜럼버스가 세비야의 항구에서 대항해를 시작한 뒤 신대륙을 발견하고 막대한 재물을 세비야로 가져왔다.
많은 물자를 해외에서 가져와서 노동보다는 예술이 발달하여 세비야는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설레는 <카르멘>, <세비야의 이발사>, <돈 후앙> 의 배경이 된다. 요번 주말에는 세비야를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과 오페라 카르멘 벙개를 하게되어 기대되는 중 ^^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되는 담배공장었던 곳으로 지금은 세비야 대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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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으로 이동하는 중 잠깐 스타벅스에 들러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커피가격은 한국보다 어딜가난 싼듯 하다.


 


세비야 대성당 바로 옆에 우뚝 선 세비야 알카사르(Alcazar)
알카사르는 12세기 후반에 이슬람교도에 의해 지어진 성채였던 자리로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 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이다.




알카사르 앞에서 눈을 돌리면 바로 세비야 대성당이 보인다.
세비야 대성당은 원래 회교도 사원이었다가 사탑만 남기고 모슼트를 헐고 성당으로 지은 것이다.
성당 내부 규모로만 치면 세계 최대, 전체로 치면 바티칸 대성당,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


성당 내부
이제부터 화질이 많이 떨어진다. 컴팩트 디카가 야외 촬영시에는 갖고다니기도 가볍고 잘 나오기도 해서 좋은데, 실내나 어두운 곳에서는 무진장 약한듯.

성당의 천장.






철문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목재 제단화가 안에 있다. 목판화에 금을 입혀 화려한 장식으로 수놓았다.
그 현란한 금장식은 식민지 약탈의 흔적이 아닐런지.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것을 보러 세비야 대성당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콜럼버스의 유해가 있는 관,(Sepulcro de Cristobal Colon)
콜롬버스의 관을 레온,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네 거인이 관을 떠받히고 있다.
스페인도 아닌 이태리 제노바 출신인 콜럼버스를 스페인의 4 왕국을 상징하는 거인들이 떠받히고 있다니 콜럼버스가 스페인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1492년 이사벨 여왕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인 무어족을 몰아내고 그라나다를 정벌했다. 같은 해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했고, 콜럼버스가 원하는 대로 돈도 주고 계급도 줘서 출항을 준비시켰다.
이로써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고 유럽에 막대한 부를 안겨줬으니, 왕국의 거인이 컬럼버스를 떠받히고 있는 것이겠거니.
 









세비야 대성당은 성당 내부규모로는 세계 최대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세비야 대성당은 그 규모 면에서 당시 미친자들의 성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만큼 대규모였기 때문일 텐데, 때문에 스페인에서 가장 화려한 성당이기도 하지만 스페인의 역사를 알 수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성당이다. 식민지 수탈의 흔적인 화려한 금장식들에 감탄하면서, 심심한 천국보다는 재밌는 지옥이 더 좋다는 말이 떠올랐다.

[May 25, 10] Sevilla - 스페인 광장

Posted 2010. 6. 22. 23:36
세비야 스페인 광장은 마리아 루이사 공원(Parque de Maria Luisa)의 반원형 건물안에 위치한 커다란 광장이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은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에 맞춰 지어진 것으로 옛스러워 보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하여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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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 가득하게 은은하기 울려퍼지는 하프 연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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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둘레에는 스페인 각 지역의 지도를 그린 타일장식들이 알록달록 펼쳐져 있다.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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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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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스페인 각 지방 지도 뿐만 아니라, 벽에는 지방의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타일 의자에서 그림을 파는 노점상들, 책읽는 아줌마들을 볼 수 있었는데, 나도 하루종일 저곳에 앉아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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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스페인 광장도 공사 중이라, 전부 둘러보기는 어려웠다.
또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거다.





스페인 광장은 국내 광고에도 자주 나왔었다.
다시 보니 김태희의 플라맹고 복장이 너무 예쁘군.
김태희니깐 소화 가능한 게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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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인의 모 카드사 CF도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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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4, 10] Ronda - 마을구경

Posted 2010. 6. 20. 01:56
론다도 다른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처럼 하얀 집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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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에서 하루종일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하얀 뒷골목의 노천 까페에 앉아 책을 읽고 일기를 썼을텐데.
Plan과 Actual간의 갭이 아닌 Forecasting과 Actual간의 갭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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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만드는 곳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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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벽의 퍼즐같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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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성당 (Iglesia Santa Maria la Mayor)
유럽 여행 시 자주 겪는 때마침 공사중 모드.
이 성당은 회교도 사원이 있던 자리를 개조해서 지어져서 그런지 꼭대기에 십자가만 없으면 성당인지도 모를것 같았다.
무대하르 양식의 탑을 개조한 종루가 보이는데, 무대하르 양식이란 그리스도교 지배 아래 있던 이슬람교도들이 만들어낸 양식이다. 벽돌이나 석고를 사용해 장식을 하는것이 무데하르 양식의 특징이라고 한다.
반대로 모사라베 양식이란것도 있는데 이슬람교도 지배 아래서 아랍화된 그리스도교도의 건축 양식이라고 하니, 건축 양식으로부터 역사를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이 스페인의 매력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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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스코의 집.
돈 보스코는 카톨릭 신부로 뒷골목의 빈민 청소년을 돌보며 평생을 교육에 헌신했다.
그가 속한 수도회에서 신부들의 안식처로 만든 집을 돈 보스코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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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
쓱싹쓱싹 썰어 와인과 함께할 상상을 하니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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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에서의 점심식사.
빠예야와 각종 해산물은 역시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았다. 단 김치대신 올리브~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올리브는 반찬처럼 항상 음식에 딸려 나오는데, 올리브 하나만으로도 와인 안주가 됙기도 한다.
안달루시아 지방이 해안가라 그런지, 해산물 메뉴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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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론다를 떠나 세비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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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론다와도 안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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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는.
마음을 치유받고 싶었던 곳.

론다는 타호(Tajo)라는 깊은 협곡 위에 펼쳐진 도시로 협곡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을 연결하는 누에보 다리는 론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광경이었다. 어쩜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가장 기대를 하고 왔으며 가장 마음이 정화되어 갔던 곳.
볼거리 많은 대도시 투어도 좋지만, 이런 거대한 자연경관을 즐기는 것도 그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전망대로 가는 길, 하프연주소리가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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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꽤 높은 지대에 있는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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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 위에 모여있는 마을.
역사가 꽤 싶은 도시라고 하는데, 이런 산꼭대기까지 어떻게 물자가 오고갔을지 신기하다.
오히려 높은곳에 위치해있어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새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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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도 넘는 누에보 다리를 보며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1700년경 붕괴된 적이 있어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는데, 다리 위를 차로 지나다니면서 살짝 불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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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정도 구경을 했지만, 누에보 다리 근처의 호텔에서 하루 머물며 아찔한 협곡을 감상해도 좋을꺼 같다.
무섭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여행을 할 때 느꼈던 점은 볼거리가 많아 참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기서 살라고 하면 절대 살지는 못할꺼 같다는 생각을 했으나, 론다만큼은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마음을 치유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론다에 잠시 머물다 가야지. 하지만 그런일은 없는게 더 좋겠다.



[May 24, 10] Ronda - Plaza de Toros

Posted 2010. 6. 18. 01:16

론다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다.
평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다.


남부지방 고속도로에서 스포츠카들이 연달아 그룹을 지어 지나가는 광경을 본적이 있는데 다시보니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들이었다
투우장에 가기 위해 투우장 근방의 광장을 지나던 도중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 자동차 여행 동호회처럼 보이는 단체가 보였다.
참 여유로운 황혼을 즐기는것 모습을 보며 나도 할머니가 되면 영감이랑 저렇게 할테야 다짐도 하고.









론다 투우장 앞에 우뚝 서있는 투우사의 동상.








론다에서 길을 거닐다 보면 마차끄는 마부와 종종 마주친다.






하얀 석회를 바른듯한 투우장의 모습은 마치 쵸코칩이 얹어진 쉬폰케잌 같다.









마드리드 투우장보다는 작은 느낌이 있지만, 지어진지 200년이 넘은 투우장이라고 하니 어쩜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투우소는 투우경기일 전날 하루종일 밥도 못먹고 어두컴컴한 작은 방에 갇혀있는다.
거대한 소가 작고 어두운 방에 아무것도 못먹고 갇혀있으며 받는 스트레스는 극에 달할 것이다.



갇힌지 하루가 지나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눈을 찌를듯한 빛을 보며 길을 따라 달려나가니 투우장 가득 모여있는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소는 완전히 패닉상태일듯 하다. 투우소는 빨간 물레야 천을 보고 흥분하는게 아니라, 투우 경기전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의해 흥분하는 것일텐데, 소가 시력과 안정을 되찾는데 걸리는 시간인 20분 이내에 죽임을 당한다.

최근 바르셀로나에서는 투우가 잔인하다는 이유로  더이상  투우경기를 볼 수 없게 됐다. 까딸루냐 지방은 역시 다른긴 다른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짜피 식용으로 길러져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죽어 고기로 먹혀질 소인데, 좋은 사료를 먹고 들판에서 맘껏 뛰놀다가 마지막 하루통안 큰 고통을 받으면서 죽는것 중 어떤게 더 잔인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투우사가 타는 말들이 사는 마굿간.
말탄 투우사의 투우경기를 직접 봤음에도 몰랐던 사실인데, 투우할 때 투우사가 탄 말이 소를 보고 도망갈까봐 말의 눈을 가리고 투우 경기를 한다고 한다. 













파란 하늘 아래 모로코의 어느 마을을 보는듯한 풍경.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답게, 투우장 안에는 투우 박물관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미술품이나 투우 복장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보게 될 줄이야.








로컬 가이드였던 안토니오.  동네 터줏대감으로 젊어서부터 론다에서 살았다고 한다.
투우장 기념품 가게의 어느 사진첩 속 기타치는 젊은 남자를 보여주더니, 본인의 젊었을때의 모습이라며 해맑게 웃는다.



스페인의 여행지 주민들은 안토니오같이 로컬 가이드를 하며 부수입을 버는듯 했다.
안토니오를 보니 연희동의 산증인이자, 인근 까페 및 먹거리 전문인 연희동 동네 가이드 이xx가 떠올랐다.  너도 할 수 있어.

[May 24, 10] The way to Ronda

Posted 2010. 6. 17. 22:41
아침 일찍 그라나다에서 론다로 이동하는 길.

론다는 깊은 협곡에 우뚝 선 바위 산 위에 펼쳐진 도시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는데 그 옛날에는 어떻게 왕래를 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스페인 남부 여행을 계획할 때 부서에서 먼저 다녀오신 분이 론다는 꼭 가보라고 강추 하셨으나 교통이 좋지 않아, 혼자 이동하기 난감했던 중, 현지에서 출발하는 자전거나라라는 회사의 2박3일짜리 남부 투어 프로그램이 있는걸 알고 바로 신청. 
마드리드를 출발하여 5명의 여인들과 남자 가이드 분이 2박 3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체코, 터키를 거쳐 스페인에서 일하고 있다는 가이드님은 이동하는 동안에도 흥미로운 스페인 이야기 보따리를 들려줘서 이동시간도 여행의 연속이었고  마치 문화 전달자 같은 느낌었었다.
첫날은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보고 둘째날은 론다로 이동하면서 점점 안달루시아 지방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마신 까페 콘 레체.
남부지방에서 오렌지 쥬스를 시키면 대개 갈아서 그대로 준다. 걸쭉한 오렌지를 꼭 마셔보길 추천.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산꼭대기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




대개 하얀 집들이 많은 듯.













알함브라 궁을 나와 까떼드랄로 가기 위해 신시가지 쪽으로 이동.



스페인 남부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오렌지 나무.
오렌지향이 그렇게나 좋은지 여지껏 몰랐는데 심지어 오렌지 나무 아래서 알수없는 좋은 향기를  아카시아 향이 아닌가 착각을  하기도 했다.





알함브라 맥주.




작은 광장.






까떼드랄(대성당, Catedral)

그라나다에 최대의 성당양식이다. 
이곳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그라나다 지역의 성당들은 보통 회교도 사원이었던 곳을 뜯어 고친곳이 많다고 한다.  





일요일이라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길거리는 한산했다.





향신료  가게.
향신료, 커리, 샤프란이 가득.













이슬람 재래시장.
화려한 무늬의 이슬람 옷파는 가게 앞, 어느 외국인 여자가 푸른색 옷을 짚더니.




냉큼 안에서 옷을 입어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외국인한테 잘어울렸다. 



이대앞에서 아라비아 풍의 옷을 파는 가게에서 화려한 색깔의 옷들을 구경 하다가 차마 서울에서는 입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엄두도 못냈던 적을 떠올리며 이때다 싶어 옷을 사기로 결정.
흥정했으나 잘 안깍아주더라.ㅜ.ㅜ 그래도 시장이라 그런지 싸게 구입.




서울이었다면 입어보지도 못했을 옷을 입고서 그라나다의 작은 골목 사이를 신나게 돌아다녔다.




다시 까떼드랄 앞으로 돌아와서, 저녁식사 겸 간단한 따파스
따파스는 간단한 안주거리용 간식으로, 식사 대용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페밀리 레스토랑의 요리들도 일종의 따파스라 볼 수 있을것 같다.



썸머타임의 영향인지 5월 말, 거의 9시가 되어도 날이 밝다. 어찌보면 시에스타(스페인의 낮잠)가 있는게 당연한것 같다. 아님 하루종일 밤새도록 잘먹고 잘노는 스페니쉬들은  체력이 금방 바닦나서  며칠에 한번씩 쓰러질 지도 모른다.



바삭바삭 새우전.



돼지고기 요리에서는 삼겹살 맛이 나고 새우전에서는 새우젖 맛도 나고 한국 음식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듯 하다.
간혹 스페인 음식이 너무 짜서 못먹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어려서부터 이북식 밍밍한 음식을 먹고 자라온 나이지만 굳이 소금을 빼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짜서 못먹었던 적은 없었는듯.
아님 내가 적응의 달인일런지도. 여행다니면서 동행했던 분들이 종종 나를 그렇게 불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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