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바티칸 구경을 마치고, SAXA RUBRA 역에서 6시 40분까지 이모부와 만나기로 했다.
투어가 끝나니 바티칸에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화장실을 잠깐 다녀오니 함께 역까지 갈 일행들은 이미 뿔뿔이 흗어져 버리고, 나혼자 남아 폭우를 헤치며 지하철 역을 찾아갔다.
가이드에 의하면 오벨리스크에서 분수대 쪽으로 10분을 걸어가면 있다는 전철역은 가도 가도 보이지를 않고, 전화는 밧데리가 거의 다 되어 정말 급박한 순간에 사용하리라 전원을 꺼 놓은 상태. 길은 깜깜해서 누가 나한테 말만 걸어도 화들짝 놀라고 점심때 먹은 피자는 역류할것만 같고 근자에 가장 최악이었다.
지도를 봐도 구별할 수 없는 복잡한 도로들과 절대음감은 있지만 절대는 물론이고 상대 방향감도 없는 나는, 여행 내내  지도보는게 가장 고역스러웠다.
다시는 혼자 모르는 곳에 오지 말아야지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짐을 했는데. (이는 나중에 베네치아 가서 다 풀어짐.)
다행히 중간에 한국인 여행객들을 만나 함께 전철역을 찾으러 돌아다녀서 마음이 편했지만, 전철역 찾는데만 30분. 약속시간에 30분 이상 늦을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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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SAXA RUBRA로 가려면 OTAVIANO 역에서 전철을 타고, 2정거장 뒤인 FLAMNIO역에서 내려 로마 외곽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을 하고 8정거장이 지나면 SAXA RUBRA가 나온다. 로마가 서울이면 SAXA RUBRA는 분당 정도 되겠거니.
그런데 중간 환승역에서 갈아타고 10분을 앉아있어도 출발을 하지 않더니, 일부 사람들이 갑자기 우르르 내리서 옆자리 이탈리아인에게 물어보니 너도 내려서 맞은 편 기차로 갈아타라는 것이다.
어쨌든 갈아탔는데.
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은 나오지도 않고, 첫 몇구역은 창 밖 간판으로 알아보았으나 몇정거장 지나니 비로 인해 안개가 가득차서 창밖이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어쨌든 8 구역이 지나, 옆자리 사람한테 여기가 SAXA RUBRA냐고 물어보니 벌써 한구역 지났으니 이번(LABARO)에서 내려서 돌아가라는 말이.
LABARO라는 지역은 루마니아인들이 사는 빈민가로 범죄가 많은 동네라고 한다.
그런 동네인줄 몰랐다 해도, 사람들의 눈빛이 로마에서 많이 봐오던 여행객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어쨌든 사람들과 눈마주치지 않으려고 또 자세를 웅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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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20분을 기다리며 마지막 남은 밧데리를 걱정하는 이모에게 안심의 전화 거는데 사용하고, 내 핸드폰은 전사했다. 이제 한정거장만 가면 되니깐.
SAXA RUBRA에서 이모부와의 조우.
너무 길었던 하루이자 바티칸의 감동이다 뭐다 신라면에 말아먹고 너무 무서운 기분에 소화가 안되었으나, 오늘의 와인을 마시니, LABARO의 무서움은 잊어버리고 다시 바티칸의 감동이 떠올랐다.
겨우 정류장 하나 지나쳤을 뿐인데, 이렇게나 무섭다고 오도방정을 떨다니.
하지만 그 기차는 8시면 끊기고 그 지역이 범죄가 많은 동네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만일 기차라도 끊겼다면 핸드폰도 없이, 서울에서도 타기 무서워 하는 택시를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서 어떻게 탔을지.